세계시민으로 되어가기가 일회적 교육이나 단기적 현장 방문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노출과 교란, 비판적 성찰, 그리고 책임있는 실천이 축적되는 장기적 실천 과정임을 ...
비판적 세계시민교육이 추상적 규범 담론을 넘어, 이미 불평등한 구조와 권력 관계 속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는 자신의 위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타인을 향한 새로운 윤리적 책임을 모색해 가는 실천적 사유의 과정임을 밝히고자 한다.
완전히 공감한다. 내가 왜 교사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세계시민이라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 이유이지 싶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내 자신을 되돌아 봤다.
► 특정한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거나, 나와 관련짓고 있는가?
► 불평등한 구조와 관계를 바탕으로 나의 위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는가?
► 타인을 향한 윤리적 책임을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교육청/교육지원청의 세계시민교육과 관련된 예산 교부 시 목표를 보면 <세계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실천하는 능동적인 학습자로서 역량을 함양>하는 것이다. 다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어떨까. (저경력 교사로서 본 단편적인 모습이다. 모든 학교가, 모든 교사가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 좀 더 가볍게 배울 수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를 '체험'한다. 관련된 책이나 키트로 수업을 구성하는 학교도 있고 전통 놀이, 악기 연주 등 전문적인 외부 강사를 초청하기도 한다. 국제교류를 하기도 한다. 외국의 초등학교 혹은 학급과 매칭하여 편지를 쓰고, 서로의 문화를 소개하고, 기프트 박스를 공유한다. 나도 앞에서 이야기한 것들을 다 해봤다. 하지만 동일하게 느낀 점은 단편적이고, 일회적(회기가 더 많을지라도 종업하면 끝나기에)이라는 점이다. 과연 학생들이 세계시민이 되었는가? 되어가고 있는가?
[평화와 협력을 위한 세계시민윤리교육의 실제] 를 읽고
박윤진님
중학생 때 영어동아리에서 꿈을 발표했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그때 내가 발표한 내용은 비정부기구에 소속되어 추상적이지만 세계에 있는 아동들을 위해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3년 내내 세계시민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세계 여러 집단, 계층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공감하고자 노력했다.
지금은 4년차 초등교사다. 아직 역량도 경험도 부족하지만, 아이들이 좀 더 지구적인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을 위해 주체적인 행동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수업을 구성하고 있다. 세계시민교육이라는 주제로 말이다. 하지만, 어렴풋이 작년부터 나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그렇다면, 나는 세계시민인가?'이다. 인식을 하고 행동까지 이어지기엔 너무나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임하진 않았나 싶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본보기가 될 교사로서도, 교사이기 전에 사람으로서의 태도도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올해는, 세계의 청년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작지만 조금씩 해보자는 나만의 목표를 세웠었다.
그러다 최근 좋은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모교의 이인재 교수님께서도 저자 대표로 계셨고, 저명하신 교수님들께서도 각자의 분야에서 바라본 세계시민윤리교육을 다루어주셨다. 그중 호이 박자연 대표님께서 참여하신 4장의 제목부터, 내가 본래 갖고 있던 고민과 맞닿아 먼저 읽어보았다.
Chapter 04: 세계시민으로 '되어가는' 삶: 공존과 화합을 향한 삶의 탐색과 재구성
세계시민으로 되어가기가 일회적 교육이나 단기적 현장 방문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노출과 교란, 비판적 성찰, 그리고 책임있는 실천이 축적되는 장기적 실천 과정임을 ...
비판적 세계시민교육이 추상적 규범 담론을 넘어, 이미 불평등한 구조와 권력 관계 속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는 자신의 위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타인을 향한 새로운 윤리적 책임을 모색해 가는 실천적 사유의 과정임을 밝히고자 한다.
완전히 공감한다. 내가 왜 교사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세계시민이라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 이유이지 싶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내 자신을 되돌아 봤다.
► 특정한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거나, 나와 관련짓고 있는가?
► 불평등한 구조와 관계를 바탕으로 나의 위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는가?
► 타인을 향한 윤리적 책임을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교육청/교육지원청의 세계시민교육과 관련된 예산 교부 시 목표를 보면 <세계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실천하는 능동적인 학습자로서 역량을 함양>하는 것이다. 다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어떨까. (저경력 교사로서 본 단편적인 모습이다. 모든 학교가, 모든 교사가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 좀 더 가볍게 배울 수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를 '체험'한다. 관련된 책이나 키트로 수업을 구성하는 학교도 있고 전통 놀이, 악기 연주 등 전문적인 외부 강사를 초청하기도 한다. 국제교류를 하기도 한다. 외국의 초등학교 혹은 학급과 매칭하여 편지를 쓰고, 서로의 문화를 소개하고, 기프트 박스를 공유한다. 나도 앞에서 이야기한 것들을 다 해봤다. 하지만 동일하게 느낀 점은 단편적이고, 일회적(회기가 더 많을지라도 종업하면 끝나기에)이라는 점이다. 과연 학생들이 세계시민이 되었는가? 되어가고 있는가?
호이프로젝트팀이 단기집중교사연수(STIC)를 준비하여 렌딜레에 방문했다. 하지만 동아프리카 현장에서는 한국처럼 교직 전문성 개발을 위한 연수의 개념이 없었다. 교사의 연수에 대한 서로의 인식 차이를 발견한 첫 해 연수에서 렌딜레 교사들은 "이 연수를 들으면 케냐 정부가 인정하는 교사 자격으로 상향할 수 있는지? 어떤 자격으로 우리에게 연수를 하는지"를 물었다. 교사 연수가 현지 맥락에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워크숍의 방향성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함께 배우는 사람'으로 재정의하고, 워크숍을 전면 수정했다.
해외에서 현지 교사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진행할 때, 종종 '내가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하곤 한다. 하지만 렌딜레 지역에서의 사례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가져온 교육 방식이 과연 그들의 삶과 제도 안에서 숨 쉴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지닌 교육 사고와 체계가 모든 곳에 적용되는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권위를 내려놓고 '함께 배우는 사람'으로 나를 재정의할 때, 비로소 현장의 진짜 목소리가 들릴 수 있을 것이다. 상대 국가의 교육 체계를 존중하며 그 안에서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을 찾고, 동시에 그들이 지닌 고유한 교육적 지혜를 겸허히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국 교사 간 성공적인 교류란 나의 것을 일방적으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고 그 간극을 메워가는 과정에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우월감을 경계하고, '함께 배우는 동료'로서 발을 맞추는 것이 해외 교육 협력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일 것이다.
한국에서 호이 자원 활동을 희망하는 교사들을 매년 선발하여 국제교육개발협력에 대한 협력 학습을 지원하며 학교 밖 교사 학습 공동체를 형성하고 운영했던 경험과, 한국교육청들의 교사연구회 지원 사업 및 일본의 '배움의 공동체' 운영 사례를 참고하여 우간다에도 학교 단위의 교사 학습 공동체(SLC)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SDGs로 글로벌교육개발담론의 목표가 교육 접근성에서 양질의 교육으로 바뀐 덕분에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교사 역량 강화라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 ODA 사업을 호이가 제안하여 2015 KOICA 민간단체 사업발굴지원 단년도 사업에 선정될 수 있었다.
어떻게 호이가 우간다 굴루에서 SLC를 만들고 운영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던 부분이다. 케냐 코어와 우간다 굴루의 다른 점, SLC의 모델, 체계의 기반이 되었던 부분을 읽으며 한국 교육 현장의 단면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의 학교 현장은 갈수록 개인주의화가 되고 있다. 수업을 공개하고 치열하게 성찰하는 문화보다는 서로의 수업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자 미덕처럼 여겨진다. 진정한 교육적 고민을 나누는 회의는 드물고, 그 자리는 늘 행정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소모적인 논의들로 채워진다. (역시 학교마다 교사마다 다 다른 분위기지만.)
사실 작년에 의원면직을 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학생들을 위한 수업 연구에 몰입하는 시간보단 학교 안팎으로 쏟아지는 행정 업무와 지원들에 치여 정작 내 수업을 돌아볼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성장을 갈구하는 저경력 교사에게 학교는 배움의 터전이 아니라, 업무 정말 회사 그 자체였다.
호이의 SLC 모델처럼 한국에서도 수업공개와 성찰, 수업 연구, 학교 문제 해결 프로젝트가 교사들의 일상에 녹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책적으로도 저경력 교사들이 유출되지 않도록, 교육 전문가로서 자부심을 키울 수 있도록 교내 교사학습공동체의 방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물론, 정말 수업 연구에 힘쓰는 학교안팎 전학공이 존재한다.) 교사가 고립된 섬처럼 홀로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배우는 사람으로서 연대할 수 있는 토대가 필요하다.
우간다 굴루의 현장이 궁금했는데, 최근 빠니보틀 아프리카 여행에도 공유된 적이 있어 살포시 링크를 넣었다. (진심으로 재밌고 흥미로웠다!)
나는 교사 너머의 구조를 함께 다루기 위해 타인을 향한 책임의 자리에 다시 선다. ... 공존과 화합을 위한 나의 세계시민으로 되어가기(becoming)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호이 박자연 대표님조차 스스로를 완성형이 아닌 되어가는(becoming)과정에 있다고 고백하는 부분은 큰 울림을 준다. 끊임없이 타인과 연결되고자 노력함이 나에게도 용기로 다가왔다.
교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갇힌 교사가 아니라, 교사 너머의 구조를 직시하며 타인을 향한 책임의 자리에 선다는 것. 결코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내가 매해 만나는 학생들, 서로 다른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선생님들, 그리고 그 사이 관계에서 나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시작이 될 것이다
'되어가기'의 여정, 나 또한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윤리적 실천을 고민해본다. 타인의 대한 책임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완벽한 교사가 되리라는 강박은 벗어나고, 공존과 화합을 위해 조금씩 변화하는 '되어가는 존재'로서 나를 긍정하고 싶다.
박윤진님이 작성하신 호이 책 리뷰 < 클릭하시면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