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 of HOIE / no.4]

"저는 특성화고등학교인 서울방송고에 근무하는 15년차 교사 여지화 입니다. 미술, 디자인, 공예를 가르쳤고 지금은 디자인을 주로 가르칩니다. 저는 야학, 공부방 교육 봉사를 하면서 교사의 꿈을 키웠어요. 그러다 교사가 된 이후에는 학교에서 버거운 업무를 맡았어요. 학교에서는 교육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기 보다 제가 맡은 사업에 쫓기며 살아야 했죠. 교사로서 무기력해질 때 우연히 호이 홍보 영상을 보게 되었고 아프리카 케냐 코어까지 가게 되었답니다. 그때 “당장 네 교실에도 도와줘야 하는 애들이 많은데, 아프리카까지 가서 뭐 하느냐?”라는 질문을 아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에게는 호이가 신기한 곳이었어요. 호이는 학교가 아닌데, 제가 학교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 더 나은 교육을 꿈꾸는 곳이 학교가 아니다는 사실이 저는 이상했어요.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던 저는 아프리카에 가서 아프리카 선생님들을 만났고 그분들과 대화하면서 제가 한국의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됐답니다. 호이는 저에게 교사로서 학교와 교육에 대한 의미를 찾게 도와준 고마운 단체예요. 교사로서 학교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호이가 느끼게 해 줄 때가 많았거든요.

제가 처음 호이 활동을 시작했을 땐, 팀이 되려면 정기후원을 해야 했어요. 아무 생각 없이 후원을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후원에 대한 고민도 늘어났죠. 아이들을 키우면서, 휴직도 하고, 실질 소득이 줄어들 때면, 후원을 줄일까 고민도 했죠. 그런데 그 때마다 호이가 어려워지는 거예요. 호이가 어려울 때 같이 비를 맞아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는 것에 대한 마음의 부채가 있어요. 지금은 활동가가 아니라, 후원자로 남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호이를 응원하는 중이에요. 내 인생에서 이게 어떤 의미일까? 일년에 한 번은 고민하지 않나요? 그때 후원이 작은 깨달음을 주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견디고 살아냈다는 것 만으로도, 저는 호이가 대견해요.
[Humans of HOIE / no.4]
"저는 특성화고등학교인 서울방송고에 근무하는 15년차 교사 여지화 입니다. 미술, 디자인, 공예를 가르쳤고 지금은 디자인을 주로 가르칩니다. 저는 야학, 공부방 교육 봉사를 하면서 교사의 꿈을 키웠어요. 그러다 교사가 된 이후에는 학교에서 버거운 업무를 맡았어요. 학교에서는 교육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기 보다 제가 맡은 사업에 쫓기며 살아야 했죠. 교사로서 무기력해질 때 우연히 호이 홍보 영상을 보게 되었고 아프리카 케냐 코어까지 가게 되었답니다. 그때 “당장 네 교실에도 도와줘야 하는 애들이 많은데, 아프리카까지 가서 뭐 하느냐?”라는 질문을 아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에게는 호이가 신기한 곳이었어요. 호이는 학교가 아닌데, 제가 학교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 더 나은 교육을 꿈꾸는 곳이 학교가 아니다는 사실이 저는 이상했어요.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던 저는 아프리카에 가서 아프리카 선생님들을 만났고 그분들과 대화하면서 제가 한국의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됐답니다. 호이는 저에게 교사로서 학교와 교육에 대한 의미를 찾게 도와준 고마운 단체예요. 교사로서 학교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호이가 느끼게 해 줄 때가 많았거든요.
제가 처음 호이 활동을 시작했을 땐, 팀이 되려면 정기후원을 해야 했어요. 아무 생각 없이 후원을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후원에 대한 고민도 늘어났죠. 아이들을 키우면서, 휴직도 하고, 실질 소득이 줄어들 때면, 후원을 줄일까 고민도 했죠. 그런데 그 때마다 호이가 어려워지는 거예요. 호이가 어려울 때 같이 비를 맞아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는 것에 대한 마음의 부채가 있어요. 지금은 활동가가 아니라, 후원자로 남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호이를 응원하는 중이에요. 내 인생에서 이게 어떤 의미일까? 일년에 한 번은 고민하지 않나요? 그때 후원이 작은 깨달음을 주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견디고 살아냈다는 것 만으로도, 저는 호이가 대견해요.